-간호사 대체인력인 의료보조원(간호조무사)으로 출발
간호조무사의 모태는 정부가 1962년 가족계획사업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전국에 가족계획상담소를 설치, 각 면 단위마다 1명 이상씩 배치한 가족계획 계몽요원이었다.
1962년 3월 20일 법률 제1035호에 의거 국민의료법이 ‘의료법’으로 바뀌면서 보건소법이 개정됐다. 당시 보건소법에서는 전국의 면(面) 단위에 ‘보건지소’를 설치하도록 하였으나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당시로서는 모든 보건지소에 의사를 배치할 수 없었다. 이에 보건지소에 간호사(당시 간호원으로 명칭)를 두기로 하였으나 간호사마저 부족했던 시절이라 간호사 대신 간호조무사(당시 간호보조원으로 명칭)를 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간호조무사는 간호대체인력으로 1967년부터 배출됐다.
-가족계획, 결핵퇴치, 예방접종, 모자보건사업 성공적으로 이끈 역군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보건사회부 장관 명의로 발급된 간호보조원 면허증>
결핵은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으로 상징되는 대표적인 전염병으로, 정부는 1960년대 이후 결핵을 전염성이 강한 국가 법정 전염병으로 공포하고 대대적인 결핵퇴치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 결핵퇴치의 핵심 역할을 한 것이 간호조무사다.
간호조무사들은 전국 보건소에 결핵전담 요원들로 배치되어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성 결핵환자를 발견하고 외래환자를 치료했다. 결핵환자 등록, 관리업무, 엑스선 검사와 객담검사, 관리까지 도맡았다. 이는 1956년도 엑스선상 활동성 결핵환자를 124만명에서 2005년 16만9천명으로 감염률과 발병률을 계속 감소시켜 우리나라 국가대책의 성공 뿐 아니라 선진국에 비해 결핵관리를 성공적으로 이끈 나라로서의 인정까지 받게되는 결실을 맺었다.
또한 1960년대 후반부터의 간호조무사들은 급성 전염병질환에 대한 예방접종사업의 중추적인 역할도 도맡아했다. 결핵성 뇌막염증 등 BCG접종, 콜레라 접종, 소아마비 접종, 홍역 예방접종까지 전 세대 층을 막론한 국가 필수 예방접종 현장의 중심에도 간호조무사들의 헌신적 손길이 있었다.
<예방접종을 받기 위해 몰려든 중고등학생들>
간호조무사는 또한 모자보건 사업을 위한 행정요원으로서 임산부의 산전, 산후, 분만관리, 영유아 건강관리 등을 수행했다. 간호조무사는 도시 및 시골 오지벽지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교육 및 홍보활동을 통해 산모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영유아 사망과 장애를 방지하여 모성건강을 보호하고 가정의 건강과 안녕을 지키는 가정 지킴이 역할자로서 국민보건향상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간호조무사의 역사는 1960년대 가난하고 힘없던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역사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의료강국이 되기까지의 우리나라 보건․의료 변천사를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느끼며 함께 변화 발전해온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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